스토리북
주인공의 과거 : 고아원 전멸 사건 주인공의 과거: 습격
주인공은 소규모 고아원 출신으로, 아이들과 원장 모두가 힘을 합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고아원은 알 수 없는 조직에게 습격당하게 된다. 고아원 생활을 하던 주인공.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과 원장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와중이었다.
어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게 습격을 당하긴 전까진.
고아들 중 최고령자였던 주인공은 자신이 시간을 끌 테니 아이들을 이끌고 피난하라는 원장의 제안에 따라, 원장이 뛰쳐나가고 얼마 후에 아이들을 이끌고 일제히 도주를 시작했다.
작은 규모지만 많던 고아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던 주인공은 원장의 말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최대한 도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심각해 보이던 사태와 달리 상황은 절망적이진 않았다.
원장은 평소 가르치던 호신술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검은 천을 두르고, 숲을 전장 삼아 암살 위주의 게릴라전을 펼치는 모습은 그들이 알던 원장이 아니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절망적이지 않은 듯했다. 원장이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기본 호신술과는 다른 놀라운 몸놀림을 선보였기에 검술에 깊은 지식이 없는 주인공이 힐끔 보아도 잠시나마 안심할 수 정도였다.
조직은 원장과 싸우면서도 틈틈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을 따라잡아 인질로 삼으려 했으나, 정확한 위치와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 원장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한 후, 아이들을 뒤쫓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들을 최대한 모아 대피시키며 마을로 도망쳐 경비대를 부를 생각이었으나, 잘 정비된 강도단처럼 보이는 무리는 일반적인 강도가 목적이 아니었는지 아이들을 노리는 태도를 보였다. 다행히도 원장의 검술이 우세한 것인지 고아원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전황도 승기를 띠고 있으며, 아이들도 슬슬 체력이 부족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주인공은 방향을 꺾어 근처의 동굴에서 농성하려 하였다.
마법사는 없는 모양이었고, 공격받는 방향이 하나로 한정된다면 원장이 지키면서 싸우기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조직원이 둘쯤 남았을 무렵, 주인공은 아이들을 동굴로 피신시키고 있었다.
마을과 거리가 있던 고아원에서 벗어났지만 한참 어린 아이들의 짧은 다리로는 멀리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은 고민 끝에 지친 아이들 무리를 근처 동굴에 가도록 하게 한 뒤, 원장을 도우러 가기로 했다. 원장과 싸우는 괴한들을 보아하니, 아이들을 노리는 괴한들치고는 마법사가 없는 모양이었던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책이었다. 전장의 위치가 고정되자 남은 조직원은 각오를 다지고 전술을 변경했다.
전투 중, 한 조직원이 빈틈을 보였고, 원장은 그대로 추격하여 결정타를 날리려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폭 준비를 숨기기 위한 연기였고, 조직원은 일부러 배를 내준 다음 무기를 틀어쥐고 자폭했다.
무기를 놓고 크게 물러나 피한 원장은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아이들의 경호에 빈틈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동굴로 숨은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듯했다. 아이들이 근처 동굴에 숨은 것을 금세 눈치챘는지 괴한들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따라온 상처투성이의 원장도 아이들의 위치를 짐작했는지 과감하게 괴한들 사이를 뛰어들었다.
원장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많은 아이들을 보호하며 다수의 실력자들을 상대하기엔 이미 지쳐보이는 상태였다. 결국 괴한들이 나누어져 원장을 상대하는 쪽과 동굴을 향해 달려오는 쪽으로 나뉘어졌다.
그 틈을 타, 마지막 조직원이 아이들이 숨은 동굴을 향해 달렸다.
폭발 직전에 움직일 수 없는 마력 자폭은 움직이지 않는 대상에게나 유효한 수단이었다. 아군 또한 말려들게 되어 단체전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움직임을 멈춰 버렸고, 조직은 거의 와해되었다. 이 기회를 틈타 마지막 조직원은 입구 쪽의 주인공을 무시하고 아이들이 숨은 동굴 안으로 파고들어 자폭의 전조만을 내비치며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멋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들키지 않고 숨어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동굴 안이 순식간에 발각되어 위험해지고 말았다. 괴한은 심하게 반항하는 아이들을 곧바로 처리해버리고는, 괴상한 마력 자폭을 작동시켜 아이들의 움직임을 억압시켰다.
원장은 급히 달려가 입구에서 자폭을 준비하는 마지막 조직원을 멀리 날리려 하지만
조직원의 자폭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동굴에서 폭사한다.
입구의 붕괴 또한 막지 못했고, 피신한 아이들은 전원 생매장당했다. 원장을 도우러 달려간 그나마 검술 실력이 있던 주인공과 다친 원장은 동굴로 달려갔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겨우 괴한 조금을 처치한 후 달려간 동굴은 이미 괴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는 보이지 않고 좀 더 큰 아이들은 충격적이게도 늦어버린 것 같았다.
충격받은 둘을 향해 괴한무리는 틈새를 주지 않고 바로 동굴에 폭발을 일으켜 동굴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것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소년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입구 근처에서 주변을 살피던 주인공뿐이었다.
폭발의 여파에 말려들어 상처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오히려 동굴의 바깥쪽으로 튕겨나가 매장당하지는 않았다. 겨우 살아남은 주인공은 그대로 마을까지 걸어가 홀로 구조된다. 폭발의 여파로 옆 마을에 살피러 온 경비와 하급 모험가들이 원장의 품에 겨우 숨쉬던 주인공을 발견했고, 주인공은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써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떠나게 되었다.
주인공이 조사에 참가하게 된 계기
원장에게 기본적인 전투 기술과 개인 무장 하나는 물려받았지만 아직 경험도 장비도 부족한 주인공은 모험가로 생활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큰 심적 충격을 받았기에, 주인공은 당분간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으며 무기력하게 살았다.
얼마 후, 어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전투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직접 공격해 죽인 상대에 한해 같은 감염체로 부활시킬 수 있게 되었다.
최초 발생 대륙에 존재했던 주인공의 마을은 제대로 대비하기도 전에 감염체와 대치하게 되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옆 마을이 있는 방향에서 대량의 감염체가 쏟아져 나왔다.
마을의 경비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었고, 마을의 방어 체제는 돌파당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이대로 죽어버리자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도망치지도, 참전하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결국 방어 체제가 뚫리고, 경비가 미처 막지 못한 감염체가 마을을 휩쓴다.
주민이 죽기 시작한다.
그때, 주인공의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고 그저 도망치던 무력한 자신,
처참히 살해당하는 지인들.
적의 공격에도 그저 농성만을 시도한 어리석음,
적절한 피난 조치도 없이 틀어박혀 숨으라고만 하는 경비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보이며 주인공을 충동질했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그때와 같은 참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드디어 뇌리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격정에 휩싸이며 무장을 꺼내들고, 거리를 질주했다.
혹사당하는 다리가 지르는 비명을 무시하며, 주변의 감염체를 재빠르게 파악한다.
그 날, 원장이 보였던 움직임을 떠올린다.
숲을 날아다니다시피 한 전투 기동, 간결한 일격으로 적을 처리하던 공격법.
제대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였으나, 핵심 원리만은 흉내낼 수 있었다.
불가능할 터인 움직임을 억지로 끌어냈다.
주민을 습격하려 하는 감염체를 노리고 공격을 발한다.
첫 실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솜씨로 감염체 하나를 처리한다.
뒤돌아볼 새도 없이 뛰쳐나가 전장에 가세한다.
주민을 지키고, 경비병을 돕는다.
모든 것을 쏟아내듯이 싸웠다.
어느새 모든 감염체가 쓰러져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주인공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새로이 마음을 다잡았다.
더 이상 주변의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강해지기로 결심하게 된다.
불가능한 움직임을 이끌어낸 육체는 거의 죽는 것처럼 잠들었다.
깨어난 것은 한 달 후, 아르히라는 이름의 조사 거점에서였다.
들은 정보에 의하면, 고작 한 달 만에 세상이 멸망에 다가가고 있었다.
가장 약한 개체도 징집병 정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사람이 많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세력을 불리는 특성 탓에,
군대로 감염체를 방어하려 한 도시는 역효과를 냈다.
결국 주요 도시와 국가는 대부분이 와해되었고,
인구가 많던 곳은 오히려 지옥이 되어 버렸으며,
사람이 없던 외딴 야생의 땅을 제외하고는 안전한 지대가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안전지대조차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오히려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았던 yorotorm 대륙은 감염체가 많지 않을 때부터 대비를 시작했기에
조기에 확보해둔 마을을 거점 삼아 개조하여 원인 규명에 힘쓰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구했던 주인공은 조사단에게 환영을 받게 되고,
조사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듣게 된다.
주인공은 비록 강한 모험가는 아니었으나, 다진 결심은 잊어버리지 않았기에 결국 조사에 참가하게 된다.
조사의 시작
조사에 참가하기로 한 주인공은 기초적인 장비를 양도받았다.
무장은 쓰러져 있는 동안 수리됐고, 갑옷은 원래 없었기에 적절한 것을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장비를 확인하며, 잠든 사이 무엇이 있었는지, 조사는 어떤 식으로 참가하면 될지 물었다.
먼저 바이러스에 대해 질문했지만, 핵심적인 정보는 없었다.
증언을 대조한 바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모든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발생한 것이 yorotorm 대륙이고, 동방까지 포함해 근처 대륙으로 순차적으로 퍼져 나간 양상을 띠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조사되었으나, 감염체가 어떻게 바다를 건넌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간적으로도 일반적인 감염체가 헤엄을 쳐서 이동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문명은 거의 없다고도 했다.
마법사를 활용한 고속 선박을 타고 주변 대륙을 조사해 보았지만, 주요한 도시가 많이 분포했던 몇몇 대륙은 거의 지옥에 가깝게 변해 제대로 된 탐색조차 불가능했고,
오히려 조금만 어두워도 실내에서조차 몬스터가 발생해 인간에게 버려졌던 야생의 대륙만이 감염체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수의 생존자는 야생의 대륙으로 건너가 숨어 살거나, yorotorm과 비슷하게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농성전을 위주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생존한 집단 중 그나마 여유가 많았던 조사단은 더 늦기 전에 원인을 규명하고 감염체의 증식을 막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사단 활동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다.
먼저, 약 1년 전부터 출현 빈도가 급증한 던전에서 새어나오는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
던전 중에는 감염된 몬스터를 쏟아내는 곳도 있어서, 감염된 인간보다 실제 몬스터의 수가 더 많아지고 말았으며 이는 조사의 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감염체의 시체를 통해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출처를 찾아내는 것.
연구는 전문 마법사들이 진행하지만 연구 소재의 채취는 조사단이 주로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대륙을 탐색하며 발견되지 않은 단서들을 찾아내는 것.
진행된 조사 내용이 거의 없어 무엇이든지 바이러스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속도도 느린데다가, 직접 발로 돌아다니며 미발견 던전을 찾아 청소 임무에 등록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되기에, 소규모로 탐색이 가능한 강자들은 이 임무를 주로 맡는다고 한다.
주인공은 한 달 동안 누워 있었던 바도 있어, 재활 삼아 가벼운 난이도의 임무를 받으며 조사단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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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임무를 시작으로, 주인공은 감염체 샘플 채취, 떠돌이 무리 토벌, 몬스터 소굴 청소 등의 임무를 받으며 쉬지 않고 조사에 공헌했다.
임무는 순조로웠다. 원장에게 배운 기본기 덕에 평범한 감염체 몇 마리 정도는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당분간은 감염체의 몸에 금속을 박아넣는 것을 그저 반복했다.
하지만, 임무를 거듭하는 주인공의 마음속에는 점점 초조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사망자의 소식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지키기 위해 참가했을 터인 조사 작업이지만, 막상 무언가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거점이나 던전 속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은 실력이 부족해 던전 청소 임무를 받아본 적조차 없었다.
어떻게 하면 예전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주변 사람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를 위해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임무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언제나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세 번째 사망 소식을 접한 어느 날, 트라우마로 가득찬 주인공의 마음은 결국 평정을 잃는다.
조급함에 휩싸인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주인공은 길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게시판에서 한 임무를 발견했다.
던전 청소 임무 - ‘폐광’
아직 위험한 임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임무 용지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모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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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비슷하게, 최근 조사단에 참가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보리스라고 하는데, 그는 밝고 약간 장난스러운 성격이었다.
보리스는 언제나 어두운 표정으로 임무에만 몰두하는 주인공을 위태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같이 조사에 참가하는 자신의 형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타인에게 괜히 관여하면 실례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주인공을 마음에서 지워 버렸던 그였으나,
그날따라 비장해 보이는 주인공을 보자,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실력일 터인 신참이 던전 임무 용지를 뽑아들려는 순간.
그의 입이 움직이고 말았다.
무슨 일이냐고 말하는 것 같은 주인공의 시선이 왠지 가슴에 찔려, 급하게 화제를 생각해낸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 자신의 임무를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숨도 돌릴 겸, 같이 농장의 좀벌레 퇴치 임무를 받아 보자는 제안이었다.
주인공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으나,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간 결과 임무를 수락해 주었다.
나이 어린 두 동기는, 늦게나마 통성명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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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농장의 구역을 둘로 나눠 보리스와 좀벌레를 수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스가 말을 걸어 왔다.
조사에 참가하게 된 계기, 이루고 싶은 것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왠지 말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주인공은 보리스에게 되묻고 만다.
그러자 보리스는 쉽사리 대답해 주었다.
그는 원래 아르히 거점 주변의 마을에 살던 농사꾼이었으나,
감염체의 습격에 의해 터전을 잃고 도망쳐온 이주민이었다.
가족들은 피난 과정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언젠가 가족을 찾아서 예전처럼 넓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언젠가 같이 던전에도 들어가 보자는 말과 함께, 보리스는 희망찬 웃음을 지으며 말을 끝맺었다.
그 후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무가 끝난 후, 주인공은 거점으로 돌아와 여느 때와 같이 생각에 잠겼다.
언제쯤 강해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보리스의 웃음이 떠올랐다.
자신과 다르게, 과거보다 앞을 보기로 선택한 듯 보이는 미소였다.
그 미소를 떠올리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날부로, 움직임에 스며들었던 초조함이 조금 누그러졌다.
다음 날은 주인공 쪽에서 보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둘의 사이는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둘은 임무 이외의 시간에도 친밀하게 지냈다.
샘플 채취 숫자나 하루 동안의 토벌 수로 내기를 하는 등,
주인공은 점차 보리스에게 마음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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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보리스의 형이 던전 탐색 임무에서 하루 동안 귀환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세히 물어본 결과 보리스의 형이 들어간 던전은 ‘개미굴‘이라고 했다.
보통 이동까지 포함해도 한나절 안에는 귀환할 만한 거리였으니 탈출구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리라.
보리스는 크게 평정을 잃으며 형을 구하러 가자고 소리쳤다.
주인공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고민하고,
돈을 보태줄 테니 최대한 빨리 의뢰를 발주하자며 보리스를 진정시키려 했다.
사실 주인공으로서도 누군가를 잃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판단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는 것 또한 그의 트라우마였다.
둘은 임무를 거듭하며 던전 입문자 정도까지 강해졌고, 슬슬 던전에 진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아직 던전을 탐사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입문자 둘이서 중급자용 던전 ‘수정 동굴’을 탐사했다가는 보리스마저 잃어버릴까 염려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리스는 납득할 수 없었다.
형을 잃고 말 것이라는 초조함에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보통은 발주한 의뢰에 신청자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중급 던전에서 인명 구조를 할 여유가 남을 만큼 실력 좋은 조사단원들은 고액의 의뢰를 주로 맡는 경향이 있고, 인명 구조는 보통 귀찮은데다 효율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인기가 좋지 않았다. 비상사태 속에서도 이익을 중요시하는 인간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인명 구조를 맡을 만한 사명감도 있으며 실력도 좋은 조사단원은 언제나 탐색을 나가느라 바빴다.
그렇다고 당장 보이는 던전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 맡겨 보았자, 상황이 불리해지면 포기하고 도망갈 확률이 높았기에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들끼리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보리스도 내심 그의 가족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방불명이라는 것은 높은 확률로 사망이다.
밝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하나 남은 가족인 형마저 잃는 것이 끔찍이도 두려웠으리라.
주인공과 보리스는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보리스는 점차 표정이 굳었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의 의견을 따르기로 정했다.
보리스는 어째서인지 보태 주겠다는 돈을 거절하고 길드로 갔다.
의뢰를 등록하고 왔다는 보리스의 말투는 조금 차분해진 듯 보였다.
그는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방으로 돌아갔고, 주인공에게도 오늘은 쉬자는 말을 남긴다.
주인공은 보리스가 결국 납득해 주었다고 생각해 방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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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른 저녁, 보리스가 계속 신경 쓰인 주인공은 같이 저녁을 먹자며 보리스의 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었고, 문틈에서 빛이 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방에 없는 듯했다.
주인공은 불안감에 길드로 뛰어갔다. 혹시 저녁을 먼저 먹던 것이 아닐까 하던 희망과 함께.
길드 내부에 보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게 동요하며 길드 직원에게 오늘 인명 구조 퀘스트를 발주한 사람의 행방에 대해 묻자,
그런 퀘스트는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공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개미굴‘의 지도를 받아낸 다음 길드를 뛰쳐나갔다.
주인공 역시 보리스와 비슷한 상황이 되자, 같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짧았던 자신을 책망하며, ‘개미굴’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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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에 입성하자, 느껴본 적 없는 위압감이 주인공을 덮쳤다.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중급 던전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다.
폐쇄 공간이 주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더해져 마경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멈추지 않았다.
벗의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오르자, 잠시 멈췄던 다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아원 아이들을 데리고 그저 도망치던 기억이 떠오르자, 무기가 뽑혀나왔다.
목숨 걸고 싸우던 원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더욱 가속했다.
얼마 가지 않아, 주인공은 첫 몬스터와 조우했다.
몬스터는 감염된 상태였다.
길드의 설명에 따르면 개미굴은 감염체 던전이다.
원래는 초급에 해당하는 던전이었으나 사태 발생 이후 오염되어 몬스터의 수준이 올라 중급 던전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었다.
감염된 몬스터는 특유의 야성과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되새긴 원장의 전투 기동, 그 일부를 이끌어낸다.
강해진 육체는 예전과는 다르게 부분적으로나마 움직임을 감당할 수 있었다.
격돌 직전에 뛰어올라 감염체 몬스터의 위를 잡는다.
천장에까지 발판이 있는 지형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전법을 허락했다.
천장을 박차고, 힘으로 감염체의 방어를 뚫으며 일격에 상대를 처리한다.
첫 던전에서의 전투는, 예상치 못했던 가벼운 승리로 끝났다.
희망이 커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보리스의 이름을 부른다.
너만은 구해낼 수 있겠다며.
전투의 고양감을 빠르게 가라앉히며 침착함을 되찾고, 하염없이 던전을 나아간다.
이후로도 몬스터와 여러 번 조우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기동성을 살린 전투 기술로 상대와의 신체적 격차를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체력을 크게 소모하는 움직임을 취했음에도 피로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은 더욱 가속하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중급 던전을 주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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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던전을 나아가기를 삼십 분.
성과는 없었다.
상당히 진행했지만 던전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땀을 흘리며 호흡을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신체적 피로는 평소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다만, 아무리 나아가도 보리스를 찾을 수 없는 것에 평정을 다시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단시간 내에 성장을 이루었으나 보리스도 그럴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보리스는 몸이 튼튼해 자신보다 신체능력은 좋았으나, 훈련을 받은 적은 없어 기량은 떨어졌다.
이 던전의 특성상 보리스에게는 악조건이었을 터다.
혈흔이나 바닥에 떨어진 장비품은 없었던 걸로 보아 당한 것 같지는 않지만,
슬슬 한계에 몰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던전을 계속해서 탐색했다.
그때, 멀찍이서 형을 부르는 보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렬한 금속음과, 격정에 휩싸인 기합소리와 함께.
주인공은 다급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전력질주하려 했으나,
보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몰려든 몬스터 떼가 주인공을 방해하고 말았다.
한 마리씩 기술로 처리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모든 몬스터를 처리할 때까지 5분이 지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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